What I read/로맨스

[조선춘화] - 이혜경

한 걸음씩 2012. 6. 23. 17:59


2012년 6월 14일부터 6월 23일 읽다.


꽤나 오래 들고 있었던 책이다.

중간에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할만큼 대공사를 하는 바람에

좀처럼 이 책을 손에 쥘 수가 없었더랬다.

하지만, 분명, 재미있는 책이었다.


양반들의 사생활을 몰래 캐내어 춘화와 곁들인 글을 쓰는 설공찬.

그런 설공찬 때문에 잔뜩 곤경에 처하게 된 유창이.

잡고 보니 설공찬은 조보늬였고, 그런 보늬와 함께

청나라 연행길에 오르게 된 유창이.

그리고 그들이 함께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.

게다가 알고보니 그 조보늬가 여인네였다는.


주워온 자식이지만 배 아파 낳은 자식 못지않게 귀하게 키운

보늬의 아버지 조신선의 얘기도 가슴 찡했고

창이가 보늬를 생각하는 마음도 잔뜩 설레고 와닿았다.

특히, 창이가 보늬에게 처음 보낸 그 연서는

어찌 그리 절절하게 와닿던지...^^


이혜경 작가와 첫 대면을 했던 '궁녀'는 

나와는 정말 맞지 않은 듯 하고,

공감할 수가 없어서 미련없이 방출했었다.

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기대도 일체 없었는데

기대를 뛰어넘는 공감, 감동, 재미, 설레임을 안겨주었으니

이 작가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된 듯 하다.

사실 상권 앞 부분에서는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

인내심을 갖고 읽었더니, 큰 재미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.

이 책은 방출 no!


유창이가 보늬에게 쓴 연서로 끝맺음을 할까한다.


오늘 문득 깨달은 것이 있으니,

아무리 맛이 좋은 술이라도 

북새처럼 재잘거리는 네가 곁에 있어야 흐뭇하게 취할 수 있고, 

활활 타오르는 화로 옆이라 할지라도 

네가 있어야만 마음까지 훈훈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.

너와 함께 하던 그 밤들은 그리도 짧더니만 

홀로 서안 앞에 앉아 있는 이 밤은 어찌 이리도 긴 것인지, 

사랑이란 늘 함께 하고픈 마음임을 알겠다.

함께 있지 않아도 늘 너를 그리니 이미 내가 너를 깊이 사랑함이다.

너는 내가 어찌하여 목숨을 걸고 정사 박명원 대감을 구했다고 생각하느냐.

이는 모두가 다 너를 얻기 위함이라.

허니, 너는 더 이상 주저 말고 나를 믿어보아라.

연경에서 너는 그리도 용감하게 말했었다.

꽃이 쉬이 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피는 것을 주저하겠느냐고 말이다.

이 서신을 읽으며 네가 이미 눈물 흘리고 있다면

너 또한 나를 그리워함이니 이제 내 품으로 달려와 

나의 꽃이 되어줌이 어떠한가.

하여, 이 화선지처럼 빈 여백이 많은 내 삶에 여백들을 채워주지 않겠는가.


-소쇄원에서 유창이-